초반부터 러셀만 보였다. 1세트에서 그는 서브 에이스 2개를 포함해 10점을 쓸어 담으며 가벼운 몸놀림을 과시했다.

특히 높이를 앞세운 블로킹이 인상적이었다. 블로킹 4개를 기록하며 KB손해보험이 자랑하는 비예나–나경복–임성진 삼각편대의 공격을 잇달아 차단했다. 9-9 동점에서 13-9로 달아나는 과정에서도 러셀의 연속 득점이 흐름을 바꿨다.
2세트에서도 그는 9득점을 보태며 거칠게 추격해 오는 KB손해보험의 기세를 다시 한 번 꺾었다.

진짜 승부는 3세트였다. 대한항공이 9-16으로 끌려가던 상황, 정지석의 퀵 오픈으로 사이드아웃에 성공하며 러셀에게 서브 기회가 돌아왔다. 러셀은 전매특허인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를 가동하며 KB손해보험 리시브 라인을 맹폭했다. 상대 에이스 비예나를 집중적으로 겨냥해 공격 빈도를 줄였고, 리시버 사이를 파고드는 절묘한 송곳 서브로 연속 득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레오나르도 카르발류 KB손보 감독이 타임아웃과 선수 교체로 템포를 끊으려 했지만, 러셀의 서브 정확도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이 구간에서 서브 에이스는 나오지 않았지만 범실이 단 하나도 없었다. 대한항공은 러셀의 서브를 앞세워 8연속 득점에 성공, 순식간에 17-16 역전에 성공했다.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온 대한항공은 흐름을 끝까지 지켜내며 그대로 셧아웃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러셀의 트리플크라운은 경기 마지막에 완성됐다. 이미 블로킹과 후위공격, 서브에서 기준에 근접한 그는 서브 에이스 1개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24-22 세트포인트에서 서브 라인에 선 러셀은 모두가 기대하던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스파이크 서브를 꽂아 넣으며 이날 경기 3번째 서브 에이스를 완성했다. 이는 팀 승리를 확정 짓는 마침표이자, 이 경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러셀의 거친 포효로 이어졌다.

경기 후 러셀은 자신의 가장 큰 무기인 서브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가진 강점이 서브라는 걸 잘 안다.
서브 라인에 설 때면 ‘다시 여기 서서 서브를 치자’는 마음가짐이 있다. 7점 차가 나던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 팀 승리에 도움이 되자는 생각뿐이었다”고 극적인 역전의 순간을 돌아봤다.

트리플크라운에 대해서도 “서브 토스를 올리는 순간, 모두가 그걸 기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1세트부터 블로킹 4개, 서브 2개가 나오니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조금 더 차분해질 수 있었고, 마지막 서브 득점으로 경기가 끝나 더 짜릿했다”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