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한 웨일스 럭비계, 몰락의 현실을 인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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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였다.
5만 명이 동시에 어깨를 으쓱하는 듯한, 눌린 숨소리.
아르헨티나가 웨일스를 상대로 일곱 번째 트라이를 성공시키며
점수 차가 50점을 넘어섰을 때였다.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가 확정된 순간,
그러나 야유도, 분노도, 휘파람도 없었다.
오직 무감각한 침묵만이 경기장을 채웠다.
침묵한 ‘지옥의 요새’
카디프의 프린시퍼리티 스타디움(Principality Stadium)
한때 상대팀이 가장 두려워하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원정지”로 불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영광은 옛말이다.
자존심이던 웨일스 럭비는 무릎을 꿇었다.
대표팀도, 지역 프로팀도 힘을 잃었고
협회는 재정난과 내분, 구조 개편 논란에 휩싸였다.
오늘의 대패는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끝없는 추락
웨일스는 2023년 이후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올해 뉴질랜드까지 꺾은 팀이다.
이번 경기는 스티브 탠디(Steve Tandy) 감독의 데뷔전이었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관중 50,185명, 코로나 이후 최저이자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
예전 7만5천석 매진의 열기는 사라지고
빈 좌석이 자연스러운 ‘새로운 현실’이 됐다.
무기력의 일상화
전반 한때 두 트라이로 동점을 만들자
잠시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곧 사라졌다.
팬들을 탓할 수도 없다.
홈 10연패, 최근 두 경기에서 120점 실점.
경기 후 거리로 나오는 팬들의 얼굴엔 오히려 미소가 있었다.
“공격이 예전보다 낫다.”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홈에서 52점을 내주고도
“괜찮았다”고 말하는 현실이야말로
웨일스 럭비의 비극이었다.
잃어버린 영광
불과 4년 전만 해도 식스네이션스 우승국, 2년 전엔 그랜드슬램 챔피언이자 월드컵 4강 팀이었다.
지금은 세계랭킹 12위.
패배에 익숙해지고, 패배에 무감각해진 팬들.
트라이가 들어올 때마다 들려온 건
“후-” 하는 체념의 한숨뿐이었다.
사라진 마법
스포츠는 예측할 수 없기에, 감정이 요동치기에 아름답다.
하지만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면, 드라마는 사라진다.
이번 주 토요일, 웨일스는
2년간 유일하게 이겼던 일본을 상대한다.
하지만 그 다음 2주 동안 뉴질랜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카디프를 찾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알고 있다.
그 경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영혼을 잃어버린 팀
패배를 거듭하는 것도 괴롭지만, 더 무서운 건 ‘영혼’을 잃는 것.
지금의 웨일스 럭비는
그 치열한 열정도,
공동체의 자부심도 잃은 채
그저 체념 속 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